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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국가유산은 민족의 정체성…대상·범위 확대"(종합)윤석열 대통령은 17일 "국가유산은 그 자체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라며 "새로운 국가유산 체계를 더 발전시켜 우리 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가유산청 출범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통해 "오늘은 문화재라는 오랜 이름이 국가유산으로 바뀌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의 문화재 관리는 유산을 보존하는 데 집중하는 과거 회고형이었다면, 앞으로는 국가유산을 발굴·보존·계승하는 동시에 더욱 발전시키고 확산하는 미래 지향형 체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려받은 유산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무형의 유산들에 새로운 가치와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라며 "국가유산을 세계에 널리 전하고 알리며 80억 세계인과의 문화적 교감을 확대해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문화 중추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하고 유형유산뿐 아니라 무형유산과 자연유산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무형유산은 기능의 보존과 전수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 고유의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담게 될 것"이라며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유산도 이제 국가 유산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자체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국가유산을 우리 사회 발전의 동력이자, 국민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문화 자산으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청년들이 국가유산을 함께 발굴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출범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최종수 성균관장, 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중 국가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과 차일혁 경무관의 후손도 함께 자리했다. 간송 선생은 1940년 당시 돈으로 기와집 수십 채에 이르는 거액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사들이는 등 소중한 국가유산을 수집해 보호했으며, 차 경무관은 6·25 전쟁 당시 소실 위기에 놓인 천년 고찰 화엄사를 지켜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문화재청에서 이름을 바꿔 새롭게 출범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후 널리 쓰였던 '문화재'란 용어도 62년 만에 '국가유산'으로 바뀌었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통해 문화·자연·무형유산 등 다양한 국가유산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정부 국정과제인 전통 문화유산의 미래 문화자산 도약을 실현할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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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국가유산청 출범 기념 '근대역사관' 5일간 무료 개방전남 목포시가 오는 15일부터 5일간 목포근대역사관을 무료 개방한다. 시는 오는 17일 문화재청이 새로운 이름인 국가유산청으로 출범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목포의 대표 역사관을 무료 개방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앞으로 ‘문화재’라는 명칭은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라 ‘국가유산’으로 변경되고 문화재 정책체제가 국가유산체제로 전환된다.국가유산은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으로 구분되며, 체제의 전환 주요내용은 국가유산의 원형 유지보다 가치의 전승을, 규제보다는 활용·진흥 등에 중점을 두게 된다.목포 근대역사 1관(구 목포일본영사관)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289호), 근대역사 2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전남도 지정문화 유산(기념물 제174호)으로 등록돼 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지난해 25만여명이 방문한 목포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박물관으로서 일제강점기와 목포항 개항 시절의 목포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국가유산청 출범과 더불어 목포를 찾는 방문객들이 근대역사관에서 옛 목포의 사회상을 보고 느낄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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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나요당농요상 수상, (사)국가무형문화재 통명농요보존회 안성배 전승교육사지난 12일에 나요당 농요상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1회나요당농요상'은 경북 예천 (사)국가무형문화재 통명농요보존회 안성배(安成培) 전승교육사가 수상했다. 안성배(1973년 통명 출생)씨는 2020년부터 통명농요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농요의 현장과 이론을 겸비하고 있다. 2016년 중앙대학교대학원 국악교육학 석사과정 졸업, 2019년 안동대 민속학과 박사과정(지도교수 한양명)을 수료했다. 안성배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선배님 어른들 제치고 이런 큰상을 주셔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큰 책임을 맡기신 것 같다. 농요의 현장과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진해왔다. 더욱 통명농요를 보존 및 계승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어 "준비하고 있는 안동대 박사학위 주제도 무형유산 '통명농요' 전승활성화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10여년 동안 통명농요 전승계보 및 회원 등 보존회 전승활동 아카이브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150여 분 회원들의 자취를 발굴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잠시 단절된 민속예술이 명백을 이어오다가, 마을제에서 활발하게 계승되었던 민속예술이나 민속연희가 이제는 마을 인구가 줄어들면서 걱정이 앞선다. 광산이 산재해 있는 있는 주변 지역과 다르게 예천은 농업이 주를 이루면서 하늘을 섬기며 마을과 전통을 지켜왔다. 그래서 통명농요 '아부레이수나' 같이 아름다운 노래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고 덧부쳤다. 예천 순흥 안씨 집성촌에서 자라난 안성배씨는 자연스럽게 통명농요를 들으면서 자라났다. 아버지, 작은아버지, 당숙어른, 사장어른 등이 모두 통명농요보존회 단원이다. 1991년부터 대학 동아리에서 풍물활동을 하다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통명농요와 통명농악를 접하고, 아버지가 작고후 보존회에 들어와서 자리를 메꾸웠다. 통명농악 상쇠어른(윤석원, 1937-2008)이 작고 후, 2009년 제50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경북대표(상쇠)로 출전, 현재 통명농악 상쇠를 맡고 있다. 마을 동아리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예천 통명농요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의 농민들이 매년 모심기를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부르는 농요로 조선 중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심기할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와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애벌매기소리'와 '상사디야',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에이용소리',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마당논매기, 타작소리인 '봉헤야'가 있다. 모심기소리나 논매기소리가 모두 느리고, 길게 빼는 음을 많이 쓰고, 노래를 메기고 받을 때에 앞소리의 끝과 뒷소리의 앞을 부분적으로 겹치게 불러 이중창적인 효과를 내는 점은 예천 통명농요의 특징이다. 한편 재단법인 나요당 농요상기념사업회는 40여 년을 농요 보존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나요당 이소라 이사장의 단독 출연재산으로 운영되는 재단이다. 농요연구 권위자 나요당 이소라 이사장은 "이 상은 당분간은 농요의 전승,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참된 일꾼을 그동안 보아온 자들 중에서 수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측은 "정관에는 3년마다 1회 수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요기념비가 2026년도에 세워진다면, 함께 제2회나요당농요상 시상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농요기념비를 금년에 세울려고 오석을 보령에서 주문해 놓고 새겨질 글씨도 서예가로부터 받아놓았지만, 보존회 건물이 새로 증축되어서 1회 농요상만 시상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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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십오야 뜬 달이 왜 이리 밝아 산란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다미 소리도 처량쿠나.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보세. 감상 아리랑에 대하여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一群)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리랑은 남과 북에 고루 분포되어 있고, 국외 180여 개 동포사회에도 널리 향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부른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이 전승되어 오고, 멀리 소련시대 우즈베케스탄,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고려아리랑', 러시아 사할린 한인들의 '사할린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랫말에서 ‘십오야 밝은 달’과 ‘풀벌레 우는 밤’을 강조어로 뽑아 고체로 도드라지게 하고 후렴과 더불어 세 구절을 민체로 흘려 잇달아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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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거목' 박헌봉 기념 '기산음악박물관' 11일 개관우리나라 국악 이론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산 박헌봉 선생(1906∼1977)을 기리는 박물관이 문을 연다. 9일 전통음악계에 따르면 경기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계곡 인근에 위치한 '기산음악박물관(기산 M&B MUSEUM)'이 11일 개관한다. 기산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에 전국을 돌며 명창의 민요와 판소리를 녹음하고 채보한 인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국악예술학교와 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설립을 주도하며 한국 전통음악 계승과 발전에 기여했다. 또 창악 기원과 유래, 음조 등을 비롯한 창악 이론이 모두 담아 '국악대사전'으로 불리는 '창악대강'을 집필했다. 이어 한국음악을 집대성한 '국악대관'을 집필하던 중 탈고하지 못하고 1977년 병환으로 별세했다. 3층으로 지어진 박물관에는 창랑 장택상 선생 등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그림이 전시된다. 조선 후기 명창들의 육성 판소리를 녹음한 릴테이프 원본도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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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요학회 제81차 정기학술대회한국민요학회(회장 이용식)는 오는 6월 28, 29 양일간 2024년 한국민요학회 제81차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남민요의 전승과 변이’를 주제로 부산국악원에서 발제를 포함하여 9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기조발표 및 9편의 발표 논문은 다음과 같다. 시간 내용 발표자 13:30~13:40 개 회 개회사: 이용식(민요학회장) ▶2024년 6월 28일(토) [제1부] 영남민요의 전승과 변이1 좌장: 최헌 (부산대 명예교수) 13:40~14:10 [기조발제] 일제강점기 울산울주지역 조사 민요의 성격 고찰 발표: 박경수(부산외대 명예교수) 14:10~14:40 [제1발제] 밀양아리랑에 나타난 색채어 연구 발표: 심상교(부산교대) 토론: 김남석(부경대) 14:40~15:10 [제2발제] 경남 거창지역 민요 활동가 박종섭 연구 발표: 최자운(세명대) 토론: 류명옥(부산외대) 15:10~15:20 휴 식 [제2부] 영남민요의 음악 문화 좌장: 권도희(경북대) 15:20~15:50 [제3발제] 밀양아리랑의 한국 생태계 발표: 박소현(영남대) 토론: 정은경(부산교대 ) 15:50~16:20 [제4발제] 거제 <살방깨발소리>의 전승과 변화 양상 발표: 서정매(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토론: 김성혜(동국대) 16:20~16:50 [제5발제] 문경모전들소리의 상여소리에 대한 음악적 해석 발표: 소영(영남대) 토론: 서지혜(전남대) 16:50~17:10 연구윤리교육 ▶2024년 6월 29일(토) [제3부] 영남민요의 전승과 변이2 및 자유주제 좌장: 권오경(부산외대) 10:00~10:30 [제6발제] 경상북도 민요조사의 현황과 과제 발표: 정서은(경북대) 토론: 김미영(전남대) 10:30~11:00 [제7발제] 대구경북 지역 민요 무형유산의 전승실태 연구 발표: 문승호(국립부산국악원) 토론: 한정원(국립국악원) 11:00~11:30 [제8발제]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전래동요 노랫말의 양상과 교육적 의미 발표: 정한기(전주교대) 토론: 강혜진(부산대) 11:30~12:00 [제9발표] MBC 북한민요 원본자료의 구성과 의미 발표: 김정희(전주대학교 문화산업연구소) 토론: 정경조(국립부산국악원) 12:00~12:10 폐 회 폐회사: 이용식(민요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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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우수 프로그램상, 3.1절 특집 다큐<br> '외면의 기록, 생존자'. 촬영상 수상한 강주진 감독KBS 3.1절 특집방송 '외면의 기록-생존자'가 3월 1일 방영되었다. 이 다큐를 제작한 KBS대전총국(국장 심각현) 제작팀이 KBS우수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박지현 작가 강주진 촬영감독이 1년간 국내외 강제징용 피해자 중 생존하고 있는 14명을 찾아가는 과정과 진술을 다큐로 담아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136명이 사고로 수몰된 조세이 탄광 (해저탄광)을 비롯해 방직공장, 군부대, 비행장 등 곳곳으로 강제 동원된 피해 생존자 14명에게 듣는 역사의 기록이다. 제작팀은 코로나가 심했던 2022년 초부터 1년 동안 강제동원 현장 조세이탄광, 미이케탄광, 하시마탄광을 찾아서 피해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다시금 새기고 기억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여전히 사과와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무거운 경종을 울렸다. 본지와 인터뷰 과정에서 강주진 촬영감독은 "지난 2019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다녀 온 후 강제징용에 대한 다큐를 접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만나본 생존자들의 증언은 말로 다 담아낼수 없었다. 그나마 이 다큐에서 징용된 피해자들 중 생존자 14명의 기억 속에 생생한 '그날의 기억들'을 기록한다. 부디 이 기록을 통해 피해자들이 '외면' 당한 아픈 과거의 '내면'을 공감하고, 역사 진실 규명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라고 전했다. 피해자들은 모집 공고에서 숙식 제공은 물론 학업을 이어가게 해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현지에도착해서 마주한 것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아픔과 여전히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도 짚어 본다. 또 일본 나가사키시에 있는 '일중우호 평화부전의 비'에 조선인의 피해는 언급하지 않고 80년 넘게 외면하는 일본의 민낯을 고발한다. 지난 1년간 14분의 생존자들을 직접 만났고 그들의 생생한 기억들을 카메라에 기록했다. 106살의 류기동 할아버지부터 101살, 100살, 99살, 98살... 이제는 초고령의 나이로 한 걸음 내딛기도, 한 마디 꺼내기도 힘든 노인이 된 생존자들... 하지만 '기억은 매우 또렷했다. '어쩌면 이 기록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한일 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해결을 위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생존자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진심을 다한 사죄와 배상이다. KBS대전 개국 80년 UHD특별기획 '외면의 기록 - 생존자'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ekaXhQtEjQc)은 KBS대전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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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모던걸들의 춤판 '모던정동'…"자유 갈망하는 모습 담아"짤막한 머리에 화려한 드레스, 높은 구두,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 살짝 들어 올리는 새끼손가락까지. '모던걸'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신여성을 뜻하는 모던걸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여성들이 서양식으로 외모를 꾸미고 사고방식도 진보적으로 변화하면서 등장한 단어다. 낭만과 청춘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당시에는 '못된 걸'로 불리는 등 부정적 이미지도 강했다. 신인류나 다름없던 이들을 받아들이기엔 유교 문화의 벽은 너무나 공고했고 시대 역시 엄혹했다. 하지만 모던걸들은 지치지 않고 자유를 좇아 현대 여성권과 문화의 밑거름이 돼줬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연희극 '모던정동'은 경성을 주름잡는 모던걸들의 신바람 나는 춤판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용을 전공한 취업준비생 유영(조하늘 분)이 100년 전 정동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돼 기생인 화선(나래)과 연실(김민선)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신작으로, 전통과 서구문화가 섞여 있던 근대 예술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냈다. 안경모 연출은 30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근대 경성은 새로운 문명과 사상이 물밀듯 들어오면서도 (전통적) 인식은 변화하지 않아 사람들의 갈증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시대"라면서 "작품을 통해 무모하리만큼 꿈을 위해 덤벼들고 자유를 갈망했던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숙 예술감독은 "그 시절은 암울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변화가 있던 시대"라면서 정동이 이 같은 근대 문화의 출발지로서 "많은 역사와 문화를 올곧게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구 문화가 뒤섞인 시대가 배경인 만큼 '모던정동'에 나오는 춤도 한국무용에서부터 스윙까지 다양하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화선과 연실은 장구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다가 어느새 양장 차림으로 남자들과 짝을 맞춰 몸을 흔든다. 음악 역시 '사의 찬미' 같은 가요는 물론이고 신민요 '봄맞이', 만요 '그대와 가게 되면', 외국곡 '싱 싱 싱'(Sing Sing Sing) 등을 인용한 다채로운 곡들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용수들의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다. 이 작품은 스토리를 해설해주는 소리꾼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은 대사 없이 70분 내내 춤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무대까지 전해질 정도로 강도 높은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끝까지 역동성을 잃지 않는다. 안무를 맡은 정보경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무수히 흐르는 에너지에 집중했다"면서 "후반부 40분은 무용수들이 미칠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설명했다. 가만히 앉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명이 나지만, 이 작품은 당시를 '낭만의 시대'로만 포장하지는 않는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문화를 탄압하는 장면이 나오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 의지를 담아 작사한 노래 '거국가'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안 연출은 "(등장인물들이 일제에 의해 받는 고통을) 설명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낭만과 좌절이 응축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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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21>윤하림 해금풍류 II <산조> 2023년 윤하림 해금풍류 I <영산회상> 음반을 출반한 성남시립국악단 상임 단원 윤하림 해금 연주자의 2번째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1960년대에 발생한 류대봉, 임선문, 지영희, 한범수 명인의 산조가 수록되어 있다. ‘해금산조’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발생하였으며 1960년대는 공연과 음반계에서만 유통되던 산조가 교육계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산조로서의 정형성과 틀을 완성한 시기로 해금산조의 확립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해금산조’를 만든 인물은 류대복(1907-1964), 임선문(1913-1987), 지영희(1909-1980), 한범수( 1911-1984)명인이 있으며 자신의 ‘해금산조’를 만들어낸 이들은 당대에 해금이라는 악기를 섭렵한 예인으로 악기 특수성의 파악을 뛰어넘어 산조라는 독자적 음악 양식으로 ‘해금산조’를 창조해 낸 예술가들이다. 4가지 ‘해금산조’ 모두 동시대에 발생한 산조들이지만 개인의 음악세계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자신만의 가락을 형성한 것으로 장단구성, 음역활용, 악조구성 등 음악적 특징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류대봉, 임선문 해금산조’는 CD 음반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산조이다. 1960년대의 ‘해금산조’ 4가지의 특징을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4인 4색을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 이영섭의 창작음악 <바람으로부터> 영남대학교 음악학부 국악 전공 교수 이영섭 대금연주자의 창작음악 음반이다. 연주자의 4번째 음반으로 창작음악 음반으로는 첫 음반이다. 음반에는 연주자가 작곡한 다양한 구성의 7곡이 수록되어 있다. 연주자의 다양한 경험과 취향, 철학 등이 고스란히 담긴 고유한 색깔과 울림, 그리고 연주자 중심의 음악적 해석과 기법들을 작품에 녹여 내었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해온 연주자들과 깊은 교감은 아름다운 앙상블로 엮어져 마음에 바람을 새로이 일으키고 있다. 대금 독주곡 ‘호접지몽’ B플랫 대금으로 분다. 대금과 피아노 2중주 ‘Morning’, ‘Evening’은 D대금으로 연주하고 ‘A Hymn’은 단소와 피아노 2중주이다. 실내악 ‘나비의 꿈’에서는 B플랫 대금으로, ‘Wyndchase’(미국 렌트하우스의 이름)에서는 E플랫 대금, 마지막 ‘바람으로부터’ 곡에서는 소금을 연주한다. 곡 설명이 수록된 해설서는 자세하며, 대나무로부터 불어오는 소소한 바람이 우리들의 가슴에도 잠시나마 스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음반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문가영 <취타풍류> 국립남도국악원 문가영 피리 연주자의 비매품 USB 음반이다. 음반에는 21:20 초의 ‘취타풍류’가 대금 이관규, 해금 박은서, 장구 김형주의 사중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음원은 2023년 3월 18일 빛고을 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 문가영 2번째 피리독주회 ‘취타’ 공연에서 ‘취타풍류’를 연주하였는데, 그 독주회가 끝나고 ‘취타풍류’ 녹음작업을 따로 하여 USB에 담은 것이다. ‘취타풍류’는 조선 시대 임금이나 고관의 행차, 군대 행진 때 사용된 음악이지만 지금은 감상용으로 연주되고 있다. 모음곡 형식으로 궁중의 ‘취타풍류’와 민간의 ‘취타풍류’가 그 구성이 조금 다르다. 이 음반에는 지영희 명인으로부터 전승되는 민간 취타풍류로 ‘취타-길군악-길군악 돌장-길타령-염불타령-삼현타령-별곡타령’ 7곡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서는 아주 간략하고, 음반 형태는 CD처럼 제작되었다. 이 음반은 USB 음반으로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반 CD 케이스에 USB스테이션을 만들어 장착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형태이다. USB 음반은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 보관·정리하기가 난감한데 이렇게 제작하니 CD 장에 그대로 정리할 수가 있어 너무 좋다. 유성기음반 - 1925년 란란타령 <아릉렁고개뎡거댱짓고>-긴아리랑- 필자가 제작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주요 아리랑 유성기음반 복제 사업으로 14번째 음반이다. 음반 뒤에 부착한 제작자의 글을 인용한다. 1925년에, 일본축음기상회의 3번째 녹음(1923년)으로 <란란타령>(일츅죠션소리판 K-137A. B) 1장(2면)이 출반됩니다. 그중 A면 <란란타령 아릉렁고개뎡거댱짓고>(노래:유운선. 이유색)를 복제했습니다. 음반 라벨은 2종류가 보이나 복제라벨은 나중에 나온 것입니다. 이 음반에서 <란란타령>은 지금의 ‘긴아리랑’입니다. 유성기(SP) 음반은 유성기로 들어야 제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성기로 감상하기 위해 제작하였습니다. 본 음반은 영국(Vulcan Record Co.)에서 쪽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현재 양면 제작 불가) 음원은 제작자가 소유한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 해설서의 가사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채록했습니다만 완전하지 못합니다.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요한 ‘아리랑’ 유성기 음반 복제사업도 막바지에 왔습니다. 끝까지 많은 성원 바랍니다. 유튜브 감상 : https://www.youtube.com/watch?v=5exBMS8yi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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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 보는 '제94회 남원춘향대전'[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손꼽히는 남원춘향대전(남원춘향제)이 오는 5월 10일(금)부터 5월 16일(목)까지 7일간 남원시 광한루원 일대에서 열린다. ‘춘향, Color 愛 반하다’라는 주제로 올해 94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다채로운 콘텐츠와 공연예술 프로그램, 다양한 볼거리를 포함하여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만족도 높은 축제를 지향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기존에 5일간 진행되던 것을 7일로 늘리며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축제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 하여, 민속악을 중심으로 국악의 활성화에 앞장서는 남원의 대표 전통예술 기관 국립민속국악원 김중현 원장님(남원춘향대전 운영위원장)과 남원춘향대전 총괄을 맡은 이영규 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원장님, 팀장님. 이렇게 뵙고 인터뷰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곧 있을 춘향국악대전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요. 그 전에 먼저 원장님과 팀장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 안녕하세요. 저는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김중현입니다. 국악원 원장직을 통해 국악 공연과 연구, 교육 사업 등에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어요.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춘향국악대전 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안녕하세요. 이번 제94회 춘향국악대전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이영규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맡아 준비하고 있고요, 이제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아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Q-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제 94회 남원춘향제는 최장수 전통문화축제로 꼽힌다고 들었습니다. 춘향국악대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춘향국악대전은 그동안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가장 오래된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지역민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라는 데에도 의의가 있어요. 공연예술부터 다양한 행사나 먹거리 등으로 관람객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은 축제입니다. Q- 이번 축제는 기존의 5일에서 일주일로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역대 춘향제와 다르게, 올해 남원춘향제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나 기획도 있나요? 이- 이번 춘향국악대전은 무엇보다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보자’는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한복을 입고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2월부터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복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현장에 한복 대여소를 운영 할 예정이라, 관객들이 모두 무료로 한복을 빌려 입을 수 있어요. 직접 가져오셔도 좋고요. 한국의 문화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Q- 춘향전 속 주인공이 되어 모두가 한복을 입을 수 있다니, 정말 색다르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요. 춘향전을 모티브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이- ‘춘향전’의 가치는 ‘사랑’이잖아요. 사랑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춘향의 사랑에는 특히 용기와 헌신, 희생이 드러납니다. 이는 서양의 고전적 사랑과는 또 다른 동양적, 한국적 의미가 도드라져요. 이에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하여 보다 세계적인 축제로 확산시키고자 춘향전을 모티브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남원춘향제에서 개최하는 미인선발대회인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절개를 지킨 춘향의 사랑을 또 다른 K-Culture의 문화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올해는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캐나다 5개국에서 동시 개최하여 글로벌 축제로써의 한 걸음을 딛어냈습니다. Q- 이번에 국립민속국악원과 춘향국악대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요. 국악원에서 맡고 있는 공연이나 행사도 있나요? 김- 우리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춘향제 초청공연으로 5월 12일, ‘남원에 새봄이 들어’라는 창극을 선보입니다. 총 41명의 단원이 출연하고요,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장원급제한 후 남원에 돌아와 춘향과 만나는 장면을 그려 낼 예정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공연예술제이기에 남원시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입니다. 우리 국악원도 이에 함께 연계하여 더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Q-국악인들의 축제인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도 빼놓을 수 없겠는데요, 특히 일반부 종합 결선과 판소리 명창부 결선에서는 청중평가단의 평가가 들어가는 것이 독특합니다. 이렇게 일반인 청중을 평가단으로 세우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 청중평가단의 평가를 포함하여 공정하게 꾸려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 춘향국악대전은 오랜 역사와 함께 실력 있는 국악인들이 거쳐 가는 등용문이기도 하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먼저 지역 쏠림이 없도록 지역 안배를 합니다. 또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를 두어, 예술마루에 등록된 심사위원을 최종 선발하게 됩니다. 논란 없이 최대한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Q- 펼쳐지는 공연을 보니, 판소리 춘향가와 전통 음악, 창작 국악, 관현악, 농악을 비롯하며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까지 진행되더라고요. 역시 전통을 중시하고 사랑하는 남원의 특색이 많이 묻어납니다. 관객들이 국악 무대를 많이 즐기나요? 이-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이기에 더욱 신경 써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남원과 우호 관계를 맺은 중국과 일본의 전통 공연을 초청하여 선보임으로, 국가 간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또 남원 분들은 귀명창이 참 많으세요. 그래서인지 국악과 전통예술 공연에 늘 관심이 많고 즐겁게 잘 즐기십니다. 김- 맞아요. 추임새도 정말 잘 해주시고, 국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게 느껴집니다. 국악원에서도 토요일마다 완창 판소리를 개최하는데, 남원 관객분들은 그 긴 시간을 늘 끝까지 다 들으시고, 반응해 주시죠. Q- 지역 인구가 소멸해 가고 있고, 도시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지역 축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성 있는 축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무엇보다 지역 문화가 활성화되는 게 크겠죠. 외부 관광객들이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의 문화를 알게 되고, 관광지를 구경하기도 하며 관광산업이 발전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5월 10일부터 11일,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춘향제 100년, 지역축제 진화와 혁신’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분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텐데, 그때 지역축제산업과 로컬관광에 관하여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이 축제를 통해 남원이 발전하는 것 외에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효과가 보입니다. 문제로 대두되던 바가지요금이나 비싼 식품 가격에 대해서도 시에서 개입하여 근절시키고자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여 더 나은 축제로, 관광지로 만들고자 노력하죠. 남원은 지금까지 체류형 관광지가 아닌 잠깐 들렀다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하지만 남원춘향제를 통해 이 지역이 더욱 홍보되고, 주변 상권을 살릴 수 있다면 더욱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될 수 있겠죠. Q- 그 외에 올해 춘향국악대전에서 색다르게 펼쳐지는 행사나 기획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이- 11일부터 12일까지, 주민 4,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형 퍼레이드 공연인 대동길놀이가 펼쳐집니다. 춘향전 속 명장면을 연출하는 퍼레이드형 놀이인데요. 예를 들어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이나 이별,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돌아오는 장면 등을 구성하여 펼쳐냅니다. 자발적인 주민 참여형 커뮤니티를 만들어, 시민이 직접 준비한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죠. 그 외에도 남원시에서 활동 중인 농악단의 대규모 농악 공연을 광한루에서 매일 볼 수 있다는 것과, ‘판락’이라고 하여 판소리와 락(Rock)의 콜라보 공연, 한복을 입고 하는 EDM 파티, 공군 에어쇼 등 볼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Q-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가 참 많은 것 같아 더욱 기대되는 축제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김- 국립민속국악원은 춘향테마파크 안에 있습니다. 그만큼 국악원에서도 춘향 관련 전시나 교육 등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남원에 들르셔서 축제를 즐기고, 그 김에 국립민속국악원도 방문하신다면 더욱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는 1,500여 개 정도인데요, 보통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게 주가 됩니다. 춘향국악대전에선 먹고 마시는 것 외에도, 한복을 입고 춘향전의 주인공이 되어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색다른 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 ‘난장’이라는 야시장을 통해 막걸리 축제를 병행할 예정이에요. 특히 이번에는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와 협업하여 맛있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남원 막걸리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꼭 놀러 오셔서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춘향테마파크와 광한루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남원은, 어딜 가든 춘향과 몽룡이의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났다. 춘향의 사랑을 주제로 관객 모두가 춘향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춘향국악대전’. 가장 오래된 ‘최초의 지역축제’인 만큼 그 준비 과정 또한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 가치를 드높이고 관객들에게 더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더 나아가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대표 지역축제로써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와 닿았다. 더욱 발전하기를 함께 소망하게 되었다. 푸르른 5월, 조선시대로 돌아가 춘향이, 또 이몽룡이 되어 색다르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춘향아 이리와 업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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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세실풍류, 51명이 근현대춤 100년사 선보인다국립정동극장이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근·현대 춤꾼들의 100년 여정이 담긴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창작춤을 이끌어온 춤꾼 51명의 무대가 이번 달 매주 화·목요일 여덟 차례 공연이 이뤄진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 등 신무용 시기 춤부터 2000년대 이후 컨템퍼러리 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화해 온 우리 전통춤에서 신무용의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근대 신무용이 등장한 1920년대부터 전후 무용학원 시대, 국립무용단 창단기, 1970년대 춤의 새로운 도화선이 됐던 한국창작춤, 현재의 컨템퍼러리 작품들까지 100년을 관통하는 우리 춤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 신무용기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새로운 개념으로 한국창작춤의 태동을 알리는 시기였다. 4일과 9일에는 1920년대 신무용을 조명한다. 지난 4일 1920년대 서양 문화의 도입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했던 신무용이 선보였다. 배구자·최승희·조택원의 작품을 김선정·노해진·안나경·최신아·국수호·김형남·김호은이 무대에 올랐다. 신민요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무대화하며 신무용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배구자와 신무용의 성행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함으로써 신무용 시대를 연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 조택원의 작품을 오늘날 새롭게 재현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맛깔스런 해설로 흥겹게 진행되었다. 1920년대 신무용 선구자 '배구자의 '에여라 노아라' 민요춤을 김선정이 재현했다. 객석은 첫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1920년대 뮤직박스에 이끌려 시간이동을 하게 된다. 막이 오르자 어두운 무대 배경에는 서서히 배구자의 춤자태를 보여주는 사진이 나오고,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용가는 잠시 그대로 배구자의 몸짓을 흉내 내고 정지 되어 서 있다가 춤을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백년전 불려졌던 민요는 오늘날 불려지면서 지금 시대에서 느껴지는 정서보다는 다르게 젖어들었다. 소박하고 정겨웠다. 일상복을 입는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이웃집 처녀가 집안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제 멋에 못이겨서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 첫 무대는 많은 박수를 받으면서 다음 무대가 더욱 기대되었다. 다음은 '배구자의 타령춤'을 노해진이 재현했다. 무대 배경에 나온 배구자가 입은 무용복과 똑같이 재단을 해서 만든 옷인데, 배구자는 색동무늬가 박힌 옷을 입었고, 무용가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그린 무늬가 박힌 무용복을 입었다. 노해진은 배구자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려는 집중력 있는 연기력과 호흡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렀다. 일단 타령조로 불린 무용곡이 신났다. 따라서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타령조라고 붙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구자는 1936년 직접 부른 도라지타령, 천안삼거리 곡이 담긴 음반을 낸 가무악에 능한 예술가다. 이 두곡을 엮고, 배구자의 영상, 사진, 기사자료를 참조하여 만든 신민요춤이라고 소개가 되었다. 무용을 보여주는 동안 무대에서 나오는 영상에는 미국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100세를 맞이하는 배구자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1928년 발표한 아리랑은 조선인이 만든 최초의 신무용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만큼 아리랑이 그 당시 최고의 유행가라는 것이 입증된다. 그만큼 배구자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을 줄 아는 한국 근현대무용의 선구자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유럽, 남미, 미국 등 15개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세계적 무용가 반열에 오른 최승희의 대표 작품 '초립동'과 '검무 격'은 안나경 무용가, 쟁강춤은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재현했다. 최승희는 현대무용 계열의 창작춤은 주목받지 못하다가 1934년 일본에서 조선풍 소재 창작춤을 발표하면서 대성공을 이루고 대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1937년 동경에서 초연된 '초립동' 춤을 1995년 김백봉이 새로이 안무한 작품을 안나경이 무대에 올렸다. 신명나는 밀양아리랑 선율에 맞추어서 빠른 템포로 추었는데, 허공에 들었다 났다하는 발동작을 앙징맞게 연출하며 누나같은 색시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천진난만한 어린 신랑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최승희의 상장적인 춤이라고 하는 쟁강춤은 북한무용을 대표하는 무용이다. 최승희의 쟁강춤은 무희춤이라고 불리는데, 최승희의 '무희' 춤을 바탕으로 여러 명의 무용수가 나오는 군무이기 때문이다. 쟁강춤은 손목에 '쟁강, 쟁강' 소리를 내는 쇠팔찌를 걸고 흥겨운 리듬을 울리면서 추는 춤이며, 본 작품은 지난날의 '쟁강춤'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하여 훌륭한 무대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특색있는 춤이다. 북한출신 최신아 무용가가 최승희 직계 제자답게 시원시원하게 보여 주었다. 1987년 파바다가극단에서 최승희 직계제자 김응범 선생에게서 쟁강춤을 배웠다. 남한 지역 전통 춤사위는 대개 느린 템포로 정중동을 표현한다. 여기에 북한 춤사위는 러시아 예술의 영향으로 남한보다 훨씬 빠른 템포를 유지한다. 한 시간이 넘는 무대를 남한춤만 채우기보다는 북한춤도 함께 보여주면 음악적 바란스가 안정적이라고 본다. 무대는 지루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외동포들에게 전통 춤사위만 보여준다면 러브콜이 없는 무대로 기억될 것이다. 2019년 러시아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서 최신아가 선보인 쟁강춤으로 러시아 동포사회와 시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오늘 무대에서도 연기력이 뛰어난 최신아는 쟁강춤을 완벽하게 선사했다. 그 댓가로 우뢰와 같은 관객의 박수를 선물로 받았다. 검무 격(格)은 검무는 신라 시대 때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던 검무를 모티브로 1934년 창작된 최승희의 대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검무가 원형을 잃어버리고 검의 움직임만을 주로 담은 섬약한 모습 무사(武士)의 검무, 즉 검술의 무도정신을 이어받은 움직임들로 창작했다. 작품 '검무_격格'은 김백봉이 최승희의 원작 '검무'를 1995년 격(格)이라는 부제로 안무 발표한 작품이다. 무예를 닦는 무인의 기백과 그 속에 깃든 기혼(氣魂)의 이상경(理想境)을 하나의 격의 경지로 표현했다. 안나경은 최승희의 춤사위를 체화하고 자신있게 보여주었다.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악기와 금색이 도는 금으로 만든 신발 등 화려한 금색 치장은 신라에서 숭상하는 검을 숭상하는 검도정신을 춤으로 형상화했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娑胡蝶)'을 국수호가 재현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그 시설 조택원의 춤사위를 잘 표현했다라고 평했다. 원로 무용수답게 완숙한 선과 호흡을 선사하여 기장 큰 박수를 받았다. 조택원의 가사호접(袈裟胡蝶)은 조택원이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가진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의 제목은 '승무(僧舞)의 인상(印象)'이었으나 이후 시인 정지용에 의해 '가사호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창작춤을 위해 처음으로 음악을 작곡한 작품이었고, 작곡은 김준영이 맡았다. 작품은 속세를 동경한 승려가 심산유곡을 버리고 새벽녘에 사바세계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가사를 벗어 던지고 환희와 광란의 춤을 추던 승려는 지쳐 쓰러져 생각한다. 불교에 의지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가사를 집어 들고 산에 가려 해보나 이미 파계승이 되어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도,뒤로도 갈 수 없는 승려는 가사를 집어 던지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가사호점은 승려의 파계와 귀의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희열을 한국의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조택원의 만종'을 김형남·김호은이 재현했다. 만종이라는 명화를 재해석하여, 신선한 스토리를 상상하게 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춤사위가 아름다웠다. 남과 여의 호흡이 잘 어울어져서 펼쳐지는 큰 원 속에서 마치 두마리 나비가 사랑을 찾아서 희롱하는 모습은 객석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조택원의 만종은 19세기를 풍미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만종'과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에 영감을 얻어 창작된 2인무다. 조택원의 집 2층에 살고 있던 음악가 김생려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 엘만이 피아노곡을 바이올린곡으로 편곡한 쇼팽의 '야상곡'을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연주를 듣던 조택원은 마침 방에 걸려있던 밀레의 그림 '만종'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만종은 1935년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조택원의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경건한 기도를 드리는 부부가 '야상곡'에 맞춰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비길 데 없는 평화와 고요, 비현세적인 경건함과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조택원의 머리에서 춤을 추었고, 상상을 실현하여 작품 '만종'이 창작되었다. 한편 9일에는 신무용 2세대 김진걸·김백봉·최현·황무봉·최희선·송범의 작품을 정민근·안귀호·정혜진·김혜윤·윤미라·손병우·김장우·최영숙이 선보인다.11·16·18·23일에는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한국춤을 모색했던 1970년대 이후의 한국 창작춤을 만나볼 수 있다. 무용 전문 조직체와 교육기관이 설립되며 더욱 다채롭고 창조적인 춤이 등장했던 시기다. 당대를 대표하는 김매자·배정혜·국수호·문일지의 작품 등 창작춤 24편이 4회에 걸쳐 공연된다. 25·30일에는 한국 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컨템퍼러리 춤꾼들의 작품 12편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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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리랑 소리극 '뗏꾼' 매주 토요일 상설공연강원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13일부터 11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아리랑센터에서 정선아리랑 소리극 '뗏군' 상설 공연을 한다고 2일 밝혔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리극 뗏꾼은 과거 나무 운반하기 위한 뗏목을 사용했던 정선과 뗏꾼에 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연관한 뗏꾼들의 사건들을 해학적으로 풀었다. 정선아리랑과 구수한 정선 사투리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의 소리 그리고 연기와 무대를 채우는 융복합 미디어아트는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최종수 이사장은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의 새로운 단원들과 함께 창작한 소리극 뗏꾼으로 한민족의 시원인 정선아리랑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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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주년 안성4·1만세항쟁 ‘2일간의 해방’ 기념행사안성문화원은 제105주년 안성4·1만세항쟁 ‘2일간의 해방’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4월 2일 밝혔다. 이번 기념행사는 3·1독립운동 전국3대실력항쟁지로 2일간의 해방이라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이뤄낸 안성독립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안성3·1운동기념관에서 시민 및 내외빈 2천여명이 참석해 지난 4월 1일 개최됐다. 안성독립항쟁은 단순 만세운동이 아닌 일제 침략기구인 면사무소, 주재소, 우편소 등을 무너뜨리고 2일간의 해방을 이뤄낸 실력항쟁으로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함께 3·1독립운동 전국3대실력항쟁지로 인정받고 있다. 안성독립항쟁은 1919년 3월 11일을 시작으로 서부권과 동부권, 시내권 등 안성 전지역에서 발생해 현재 독립항쟁 사적지로 지정된 곳만 안성지역 내 32곳에 달하며, 독립항쟁 참여인원도 당시 안성인구 7만명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연인원 8천5백명에 이른다. 특히 4월 1일 양성과 원곡, 원곡과 양성 일대에서 이뤄진 대규모 실력항쟁은 일제 침략기구를 무너뜨리고 다음날까지 해방을 이뤄낸 역사적인 독립항쟁으로 이를 안성4·1만세항쟁 ‘2일간의 해방’으로 명칭하고 4월 1일과 2일을 기념일로 지정, 안성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를 매해 펼쳐오고 있다. 이번에 제105주년을 맞은 안성4·1만세항쟁 ‘2일간의 해방’ 기념식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보라 안성시장, 염정림 경기동부보훈지청장, 김학용 국회의원, 최혜영 국회의원, 안정열 안성시의회의장, 한경국립대 이원희 총장 등 많은 공직자·기관장들이 참석했다. 또한 윤우 광복회 고문,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 이종우 광복회 안성시지회장 등 광복회를 비롯한 보훈단체장과 김태수 4.1독립항쟁기념사업회장, 이형철 안성3.1독립운동선양회장, 한경선 독립운동역사만들추진협의회장, 송근홍 노인회장 등 많은 사회기관·단체들과 시민들이 참여했다. 기념식은 만세항쟁재현퍼포먼스, 독립운동뮤지컬공연, 보훈공연, 개식선언, 기념사·축사, 유공자 표창, 3.1절노래 제창, 광복사 참배 순으로 오후 2시부터 진행됐으며, 오전 10부터 오후 5시까지는 안성4·1만세항쟁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됐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유공자 표창도 이어져 이우석(경기도지사상), 민경호·이재덕(안성시장상), 장석순·구명옥·이향미(국회의원상), 김상희·이요한(시의회의장상), 임상철·엄태수(보훈지청장상) 등 모두 10명이 독립운동정신 계승을 위한 활동을 인정받아 표창을 수여받았다. 박석규 문화원장은 개식선언을 통해 "안성은 가장 격력한 독립항쟁을 펼쳐 일제식민통치기관을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며, "1919년 그 뜨거운 대한독립만세 외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다시 울려 퍼지길 바라며 기념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승리를 달성한 의거였기에 2일간의 해방은 선조들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자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라며 "역사를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안성의 소중한 역사와 가치를 발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뜻깊은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연 도지사는 축사를 통해 "안성은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2일간의 해방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고장”이라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분들의 뜻을 이어 번영되고 발전된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일에 경기도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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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9)<br>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허튼 가락' 산조산조(散調)란 무엇인가 가장 근접 기원설 중 하나 시나위 악기들이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 바탕이나 기원은 무속음악 확실 김창조가 재구성 초기 형태 심방곡 산조 발생 시점으로 견해가 대표적 우리 음악을 크게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면, 민속음악은 다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악(聲樂)은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악곡의 종류에 따라서 판소리 등의 창가, 민요, 가요, 가곡, 기타 따위로 구분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서는 독창, 중창, 합창, 제창, 기타 등으로 나누고 기능에 따라서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놀면서 부르는 노래, 종교적인 제의에서 사용하는 노래, 기타 등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음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기악(器樂)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연주자의 수에 따라 독주, 중주, 합주 등으로 나누고 표현 형식에 따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의 가창 방식 즉, 혼자 부르는 노래, 여럿이 부르는 노래, 돌려가며 부르는 노래,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 등에 대입해보면, 악기 연주 또한 유사한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산조(散調)란 기악 독주곡을 말한다. 악기 하나를 가지고 연주하는 형태라는 뜻이다.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에서 발달하였다 하고,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의 순서로 발생하였다 했다. 또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배열된 3~6개 장단 구성의 악장으로 구분되며 반드시 장구 반주가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산조의 기원설을 전제하거나, 판소리 소리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예들을 보면 '반드시'라는 수식으로 완성되는 장르나 개념은 아니다. 대개 그렇게 발생했고 그렇게 연주되니 그러한 것을 표본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산조(散調)의 우리말은 '허튼가락'이다. 산조의 기원을 시나위니 봉장취니 판소리의 선율을 악기로 표현한 것이느니 하는 얘기들이 여기서 나왔다. '허튼가락', 산조(散調)는 어디서 왔을까? '허튼가락'의 문자적 함의는 '정형적이지 않은', '흩어져 있는', '자유분방한', '율격에 얽매이지 않는'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장르에 산조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정형적이지 않고 흩어져 있는 어떤 음악의 형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조라는 용어에 가장 근접한 기원설 중 하나가 시나위이다. 악기들이 어울려 서로 연주하는데,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을 이룬다 해서 여러 기원설을 들어 설명하곤 한다. 그 바탕이나 기원이 무속음악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악에 상대하는 향악(俗樂) 혹은 굿거리, 살풀이 따위의 무속음악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부, 충청도 서부, 전라도, 경상도 서남부 등지의 무가 반주 음악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시나위 자체가 육자배기 특징으로 된 산조의 기악곡을 말하기 때문에, 민요의 사례에 견주어 말한다면 육자배기토리로 권역화된 전라도지역의 무속음악, 다른 말로 하면 남도씻김굿 등이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조라는 음악의 기원이 시나위로 대표되는 남도 무속음악에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심방곡(心方曲) 혹은 신방곡(神房曲)기원설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방곡(신방곡)은 무속음악의 반주 음악과 다르다. 1610년 거문고 악보인 <양금신보>에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 중의 중대엽에 속칭 '심방곡'이 나온다.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오나리 오나리소서 뫼일에 오나리소서/ 졈그디도 새디도 마르시고....'라는 가사가 그것이다. 또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에 '창원 기녀에게 가야금 신방곡을 청해 들었다'는 기록과 '퉁소 신방곡'이 언급되고 있다. 무속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으로부터 산조가 발생했다는 증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었던 것이 판소리 기악화론이다. 판소리의 선율이나 장단을 모사하여 악기로 연주했다는 뜻이다. 판소리의 역사가 산조의 역사보다는 훨씬 오래되었으니 시대의 예술로 급성장했던 판소리를 모본 삼아 악기로 연주했다는 가설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봉장취 기원설도 있다. 봉장취는 유랑예인들이었던 풍각쟁이들이 봉황 혹은 기러기 등의 새 한 쌍을 주제로 하여 음악을 곁들여 연행하는 일종의 재담 연주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새소리를 주제로 하는 기악곡을 말한다. 봉장취는 '봉장추', '봉작취', '봉황곡' 등으로 불렸다. 판소리 <변강쇠가>에 '봉장추'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중국 한나라 이후 전해진 음악이라는데, '봉이 새끼를 거느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재효의 <변강쇠가>에 따르면, 눈먼 '봉사'들이 구걸을 위해 연주하던 곡이었고 이것이 풍각쟁이들의 음악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오로지' 혹은 '반드시'라는 수식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봉장취나 산조가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면서 병행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계보론이나 지역론 특정 계파론 만으로는 산조의 기원이나 발생설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영암사람 김창조가 재구성한 초기 형태의 심방곡을 산조의 발생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아래 팁에 소개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대표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판소리의 기원설을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일정한 텍스트나 인물을 거론하고 예컨대 영산강의 시원을 말하는데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의 여러 물줄기 중 담양 용소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야금산조 발생과 영암사람 악성(樂聖) 김창조 함화진(咸和鎭, 1884~1948, 일제강점기 아악사)의 <조선음악통론>(1948)에 보면, "신방초는 화초사거리를 창작하고 김창조는 심방곡을 변작(變作)하여 산조를 창작할새, 우조와 계면조로 분류하여 각종 악기에 탄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김창조가 가야금으로 현재의 산조라는 음악을 재구성했음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의 형태는 지금의 산조형식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초기 형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가 19세기 중반 무렵에 심방곡으로 시작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자료는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가 대표적이다. 권도희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심방곡의 명인이 경상도 마산포에 살던 최치학이었다.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로 전남의 김창조, 한숙구, 유성천, 전북의 박한용, 이영채, 박한순, 충청의 박팔괘와 심정순 등을 거론한다. 이들이 동시대의 음악 형식을 정형화하는데 충분히 기여했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후 김창조의 제자 한성기, 안기옥, 정남희, 강태홍, 최옥삼 등과 한숙구의 제자 한수동, 정남옥 등, 유성천의 제가 유대봉 등, 박한용의 제자 김삼태, 이영채의 제자 신관용, 박학순의 제자 신쾌동, 심정순의 제자 심상건 등과 더불어 김해선, 김운선, 함동정월 등 여성 산조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산조의 발생과 정형화에는 이같은 맥락들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김창조만이 산조를 재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창조를 내세우는 것은 문헌들이 전하는 바를 전거하는 것이요, 시대적 수요에 부응했던 초기 기여자들의 대표격으로 거론하는 것이라는 점 부기해둔다. 김창조(1856~1919)의 출생설이 두 가지다. 1865년과 1856년설인데 여러 가지 맥락상 후자가 사실에 더 근접하다. 세습율객집안 출신으로 영암읍 회문리에서 출생했다. 1915년 경에 광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고 1916년부터 전주로 옮겨 군산, 나주, 정읍, 대구 등지에서 활동한다. 64세 되던 1919년 인후염에 걸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광주 북문안 어느 집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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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귀국동포회, '동포 소식 전달' 김경희 KBS PD에 감사장"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이주를 당한 사할린 동포들의 존재는 잊혀진 우리 한민족 역사입니다. 8년째 프로그램을 만들며 사할린 한인사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의미 있는 기획을 하려고 고민해요." 2017년부터 KBS라디오 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를 이끄는 김경희(59) KBS PD는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회장 권경석)에서 감사장을 받은 소감을 밝혔다. 국내로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 단체인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는 지난 23일 사할린 동포들의 경기 파주 정착 15주년을 기념해 파주평생학습관에서 열린 '파주 아리랑 콘서트'에서 김 PD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당시 권경석 회장은 "사할린 동포들의 이산(離散)과 '이산의 이산'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할린 동포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았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는 사할린 동포, 고려인, 중국 동포 등 북방 지역 동포들과 국내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한민족의 문화와 생활정보를 제공해 민족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한민족방송 대표 프로그램이다. 사할린 동포들이 고국의 가족을 찾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1972년 4월 '사할린 동포에게'라는 제목으로 처음 방송을 시작했고, 1988년 프로그램 제목을 현재와 같이 변경했다. 2022년에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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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37) <br>분청덤벙준편덤벙의 경우는 삼벌구이를 이규진(편고재 주인) 초기 청자나 하품의 도자기가 아니면 초벌구이는 흔치 않다. 테토를 빚어 성형을 해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자기 소성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한 후 한 번 더 소성을 한 삼벌구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더구나 외국의 경우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도자기가 있다고 한다면 궁금증은 더욱 높아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라 보성에서 분청덤벙 재현을 위해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고 있는 도예가의 주장이라고 하면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는 있는 것이 아닐까. 방법은 이렇다고 한다. 즉 성형을 한 기물을 초벌구이를 한데다 덩벙질을 한 후 재벌구이를 한다. 그런 후에는 유약을 입혀 다시 삼벌구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중국에도 유례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이러한 소성방법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그에 대한 설명은 또 이렇다. 초벌구이를 한 후 덩벙질을 하고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할 경우 삼투압에 의한 기물의 주저앉음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벌구이만을 할 경우 덤벙이 아닌 반덤벙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덤벙의 경우는 삼벌구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삼벌구이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배가되다보니 보성 도촌리와 고흥 운대리의 분청덤벙은 그 제작기간이 30여년에 불과한 일시적인 제작방법으로 보여진다는 주장도 하고 있어 주목된다. 분청덤벙의 이와 같은 삼벌구이의 주장에 대해 나는 아직 어떠한 결론도 갖고 있지를 못하다. 오래 전 도촌리와 운대리를 답사한 적이 있고 두 가마터에서 출토된 비교할만한 분청덤벙편도 조금은 갖고 있지만 상기 주장에 대해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그 어떤 자료도 근거도 갖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벌구이라는 새로운 주장 때문이었을까. 자료를 찾다보니 다시 꺼내 들게 된 것이 분청덤벙준편이다. 분청덥벙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보성의 도촌리와 고흥의 운대리를 떠올리게 된다. 보성이야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널리 알려져 왔지만 고흥은 근래 들어 가마터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그 평판이 보성을 능가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 장흥 등지에서 분청덤벙이 발견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형편이어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그런데 보성 도촌리와 고흥 운대리의 분청덤벙을 비교해 보면 전자가 비교적 백분이 곱게 입혀지는데 반해 후자 쪽은 조금 거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분청덤벙준편은 다리 부분만 남은 것으로 상준이나 희준인 것만은 분명한데 어느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남은 것이 다리 한쪽이다 보니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 상준과 희준의 구별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핸디캡을 제하고 나면 남은 도편만으로도 대단한 기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은 몸체 일부를 떠받치고 있는 지름 5.5Cm의 우람한 다리 형태를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큰 기물이었는지 짐작 자체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큰 기물 전체에 덤벙을 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덥벙은 피부 자체가 거칠어 고흥 운대리 보다는 보성 도촌리 것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크기며 덤벙이며 모두가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비록 다리 한 쪽만 남은 불구의 몸이기는 하지만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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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한국을 대표하는 음곡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노래다. 각종 스포츠 대회나 정상회담 만찬회 등 공식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연주되어 국가에 준하는 음곡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아리랑'에는 각지에서 노래를 이어온 순민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가요가 있지만, 잘 알려진 것은 후자다. 행사 때 연주하는 것도 다 이쪽이다. 대중가요로써의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히트 영화 '아리랑' (나운규 감독·주연)의 주제가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이후 한일 양측에서 편곡하거나 가사를 바꾸거나 해서 많이 제작되었다. 가사에 있는 "나를 버리고 가실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이별과 모정은 한일 양측의 정서에 딱 맞아떨어져서 사랑받았다. 이 아리랑을 둘러싸고 얼마 전 서울에서 세미나가 있어 뜻밖의 사실을 마주했다. 영화‘아리랑’으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전쟁 전·후를 통해 ‘아리랑’의 이름이 붙은 노래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제작 발매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판매된 관련 레코드는 300종 이상이며 그중 일본인이 일본어로 부른 것은 200종에 달해, 한국의 4~5배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32년에 고가 마사오 편곡으로 아와야 노리코의 ‘아리랑의 노래’가 나왔고, 그 외에도 ‘아리링고우타(小唄)’, ‘도도이쓰(都々逸)아리랑’, ‘아리랑자장가’ 등 각종 ‘아리랑’이 나왔으며, 당시 신문은 도쿄 번화가에서 아리랑 노래가 나오고 있다고 ‘아리랑붐’을 전할 정도였다. 이는 종전 후에도 이어져 스가와라 쓰즈코에게는 6종류나 되는 ‘아리랑’이 있으며, 고마도리 자매의 ‘아리랑부두’를 비롯해 미야코 하루미, 니시다 사치코, 미야기 마리코, 아이조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가수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이것은 이제 ‘일본아리랑’이다”라고 놀라움을 자아냈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조선)에 대해 오래전부터 차별이나 편견,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좋은 것은 좋다’고 평가하며 선호해 온 것이다. 한류붐이나 K팝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동시에 일본은 옛날부터 문화적 수용성이 높은 사회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객원 논설위원, 2024/2/12 =한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번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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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 파주 정착 15주년 기념…23일 '파주아리랑 콘서트'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사할린에 이주한 사할린 동포들이 한국 정부의 영주귀국 사업을 통해 경기 파주에 정착한 지 15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공연이 23일 열린다. 파주사할린동포회와 국제문화공연교류회, 파주 평화어울무용단은 오는 23일 파주평생학습관에서 '파주 아리랑 콘서트'를 공동 주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와 우리민족교류협회, (주)삼정제빵소, (주)국악신문사 등이 후원한다. 양평수 국제문화공연교류회장의 인사말과 권경석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장의 답사에 이어 '한반도 평화 메달' 수여 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첫 순서에서 사할린 동포 윤민자와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이 소극 '사할린아리랑'으로 막을 연다.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과 인무학 부회장, 파주 사할린동포회 이화일 회장, 노미자 부회장이 사할린 동포들의 권익 향상 등에 기여한 공로로 '평화의 메달'을 받는다. 이어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는 사할린 동포들의 디아스포라의 한을 위로해 준 KBS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김경희 피디에게 감사패를 수여할 예정이다. 파주평화어울무용단과 고양 희락예술단, 강남아리랑예술단, 중국 동포로 구성된 전통문화예술단과 사할린 동포 가수 등은 기념공연을 선보인다. 주최 측은 "사할린 동포들이 2009년 12월 파주로 영주귀국한 지 벌써 15년이 됐다"며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이 건강하시기를 기원하고, 파주 시민들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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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모국을 방문한 1세대 사할린 동포 환영합니다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사할린 동포 1세대 어르신들이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했다. 17일 11시 50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휠체어를 탄 5인과 18명의 사할린동포 1세대 23명이 입국했다. 4년만에 모국방문을 위해 블라디보스톡에서 북경 다싱 공항을 경유하여 온 고단한 여정이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항공 운항 축소의 결과이다. 이번 사할린 동포들의 모국 방문은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하는 ‘사할린동포 일시 모국방문 지원사업’이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한 사할린,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 거주 동포들로, 대한적십자사(회장 김철수)의 요원들과 4년간 ‘사할린아리랑축제’를 개최한 바 있는 (사)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과 기미양 사무총장, 그리고 왕십리아리랑보조회 이혜솔 이사장이 프랭카드와 꽃다발을 들고 영접했다. 이번 방문자들은 1세대들로 2세 가족들과의 이산 문제로 영주귀국을 포기한 이들이다. 6박 7일간 이미 영주귀국한 형제와 친지들과 재회하고, 경복궁, 청와대, 남대문시장 등을 방문하여 고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23일 토요일 귀국일까지 대한적십자사 의료진 등의 지원으로 방문 체험을 마치면, 대한적십자사의 출국 업무 지원을 받아 귀국한다. 한편, (사)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총장은 (사)갈물한글서회 기혜경 회장과 작가 10여명의 후의로 서예작품 한글 가훈(家訓)을 방문자들께 기증하고,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은 ‘사할린아리랑’ 등 여러 아리랑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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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한글서예가전에서 만난 사할린아리랑사할린아리랑 따뜻한 조선땅을 놔 두고 가라후토엔 내 여기 왜 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南樺太 징용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즘한글서예협회 이종선 회장의 초청을 받고 13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 도착했다. 개막식을 마치고 30명의 작가가 내놓은 100점이나 되는 한국 전통문화 서예작품들을 감상했다. 이종선 회장님이 축사를 부탁하셔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은 바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가서 해방이 되었지만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70년을 러시아 국민으로 살아야 했지만 우리는 독자적인 한글이 있어서 당당하게 디아스포라와 고난을 넘길 수 있었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그래서 러시아 전국에서 사할린에서만 한글판 새고려신문이 존재한다. 전국에서 불리는 아리랑이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서체로 표현 된 아름다운 서예작품이 되어 걸려 있다. 한국 전통문화 '서예'라는 예술분야인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한글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전시회이다. 아름다운 서체로 쓰여진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서예로 탄생한 다양한 한글 서체는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즘협회 작가들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계승이 안되는 분야이다. 북한에는 서예전시회 같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들이 국악신문사에 기증이 되어 국내외에서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얼 이종선 회장님이 직접 '사할린아리랑' 작품 앞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그동안 국악신문 수요 연재 한글서예로만 받아 보았던 예술작품을 직접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특히 이 작품은 사할린 한국어 교육의 리더 공노원(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뜨기 5일 전 (2022년 9월 25일자) 수요 연재로 나와서 더욱 스토리를 더하는 작품이다. 당시 9월 28일 양구 두타연에서 개최 되는 PLZ축제에 인천과 양주에 사는 사할린동포들이 초청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이종선 선생의 사할린아리랑 작품을 공노원 선생이 인쇄해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공선생은 한얼 선생의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 사설' 수요 연재 내용을 자라나는 고려인 학생들에게 한글 수업에서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부모들이 사할린에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아리랑이다. 당시 일하면서 힘들때, 고향이 그리울 때, 결혼식 같은 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이 유일하다. 그래서 누구나 모이면 작대기로 장단을 두드리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러시아나 유럽 어느 민족에게도 하나의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곡은 없다. 우리 민족은 언제 어디서든 아리랑으로 하나가 된다. 올해는 파주에 정주한 150명 사할린 동포들이 귀국 15주년기념 행사로 오는 23일 '파주아리랑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날 휘날레에서 사할린 가수들과 이혜솔 명창이 관객들과 '사할린아리랑'을 함께 부르기로 했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사할린아리랑축제를 통해 사할린에는 아리랑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사할린 정부는 우리에게 사할린한인문화센터 앞에 아리랑공원과 아리랑누각을 선사해 주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 불리는 전국 지역에는 아리랑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정선, 진도, 밀양, 문경, 상주, 영천 등. 사할린 아리랑공원에도 사할린 한인의 역사가 담긴 이 사할린아리랑이 새겨진 사할린아리랑노래비가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이 아리랑 작품들이 사할린 전시장에서 걸리기만을 고대해 본다. 우리 동포들에게 큰 자긍심이 될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한글학과도 생겨나고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사할린 동포들을 대표해서 이 행사를 개최한 (사)이즘한글서예협회 이종선 회장과 지원을 해주신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에게 감사를 드린다. 다시 한번 이즘전을 축하한다. 사할린아리랑 무정한세월 야속하다 청춘시절 날 데려와 팔십삼이 먹도록 여기서 다 늙어 영혼이 되네. 아이구 원통하고도 참말루 싫어 누구게다 한을 다 풀까요.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고 혼저 자탄 애탄하며 팔십 서이를 살어 나와 누구게다 이런 한을 풀겠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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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길복을 추구하는 풍수영화 ‘파묘’가 해외 133개국 판매소식과 더불어, 해외 영화제 초청까지 연이은 낭보를 전하고 있다.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가 전 세계 133개국 판매 소식과 주요 국가에서의 개봉 소식을 전했다. 배급사 쇼박스가 12일 밝혔다. '파묘'는 지난달 몽골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대만의 극장에 걸렸으며 이달 중순부터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베트남 등지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북미 배급사 웰고USA는 "'파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주는 영화"라며 "북미의 오컬트 팬조차 영화가 선사하는 반전에 매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무속을 연구하는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양종승 박사가 편집부로 리뷰를 보내왔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한국무속학회 회장을 역임했다.(편집자 주) ‘파묘’ 터를 파혜쳐 길복을 추구하는 희망찬 삶의 설계도 영화 ‘파묘’가 현대인에게 ‘혼 되살림’ 메시지를 던졌다. 망자가 묻힌 터를 파헤쳐 해방을 부르짖는 자유와 희망찬 삶을 갈망하는 혼의 실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영의 존재를 소재로 한 예술화 작업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영화를 비롯한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져 왔다. 영의 세계에 담긴 신명 그리고 미적 세계관을 탐구하려는 것이다. ‘파묘’는 이에 더하여, 우리가 갈구하는 자유, 그것을 움직이는 혼의 존재를 영의 근거와 논리로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과거에는 시도되지 않았고 펼쳐 보인 적도 없었기에 필자는 관심을 가지고 신명을 돋구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혼(魂)은 넋이다. 육신인 백(魄)과 결합하여 산자로 활동한다. 죽음에 다다르면 두 개체는 분리된다.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태워지는 육신과는 달리 혼은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삶을 영속한다. 후손들은 그 존재를 숭배한다. 그리고 죽은 자와 함께한다. 그것이 혼의 세계이고 죽은 자의 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우리 삶 속에 내가 가진 혼과 죽은 자의 영혼이 함께 한다. 실체가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망자 혼은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에게 과거 흔적을 전해 주면서 옛 기억을 되살리는 보고로 역할한다. 영화 ‘파묘’에서는 조상의 영혼을 간직한 자손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바른 기풍 세우기에 애쓴다. 그 영혼의 주인공이 애국자이든 매국노이든 오늘을 사는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공동체는 바른 기풍 세우기에 애쓴다. 천지의 원기로써 그리고 민족문화의 근원적 기운으로써 우리네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둥, 그 혼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 정기는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 온 무속에 깊게 담겨 있다. 고뇌를 해소하고 윤택한 삶을 열망하는 신앙으로 자리매김한 그것이다. 그것은 우리 신념 그 자체로 존립한다. 그것이 영화 ‘파묘’ 중심에 놓여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가히 종교박물관이라고 해도 넘치는 많은 신앙 구성집단체가 있다. 그들 중, 오랫동안 깊이 있게 한국인의 정서와 신명을 다스려 온 것이 무속이다. 무속의 힘은 강하다. 영적 존재의 힘을 빌려 죽은 망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 산자의 현세적 길복을 추구한다. 신을 지핀 무녀는 무궁무진한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여 고달픈 중생의 삶을 치유한다. 영화 ‘파묘’에서와 같이 접신이 된 무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수많은 일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한다. 무속은 이러함에도 외래 종교에 수없이 짓밟혀 왔다.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가 한국 땅에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할 때도 가장 먼저 무속신앙 파악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를 건립하고 이곳에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와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을 제신으로 모셔 두고 무속을 짓밟았다.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펼치기 위해 무속에 미개의 상징인 '미신'이라는 허울을 덧씌워 압박한 것이다. 믿음이 전제되어야 존속될 수 있는 지극히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신앙체계 종교지만 문화 현상 일부라고 깎아내렸다. 비문명이라는 멍에를 씌워 서구 중심의 지배 담론을 명문화한 것이다. 그들만의 시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구 논리를 개념화하여 우리의 분노를 자극하였다. 끝없는 고난 속에서의 무속이 2024년 영화 ‘파묘’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과학과 합리성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도 우리 삶 속에 당당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이 무속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산맥의 정기를 받는 네팔 샤먼은 자신의 영혼을 밖으로 꺼내어 신의 세계로 다가간다. 그리고 접신하여 영적 존재의 힘을 얻는다. 문제 해결을 위한 수습책이 마련되면 귀환한다. 백두산 정기를 이어받는 한국 무당은 자신의 몸 안으로 신을 끌어들인다. 신이 지피면 영적 존재와 소통하고 삶의 제반 문제를 풀어낸다. 텡그리 신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몽골 샤머니즘 보우(buu)도 상황은 같다. 이들은 하나같이 눈으로 보이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조력자들이다. 인류의 행복한 삶과 수명장수를 모색하기 위해 자신들이 짊어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좋지 못한 재액을 특정 사물에 옮기게 하거나 동물을 타살하여 인간 생명을 연장하는 대수대명(代數代命)을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나는 고난과 어려운 역경을 감내하며 오로지 영의 힘으로 지하와 천상을 오가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이다. 그래서 인간이 신을 조종하고 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일상 논리를 영화 ‘파묘’로 그려낸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하지만 현대사회는 이와같은 영적 존재와 그를 따르는 신들린 자에게 인색하다 못해 색안경을 끼고서 부정적 편견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급한 일이 닥치면 영의 힘을 바란다. 이율배반적 종교 심성이다. 무속신앙 섬김 대상은 귀신(鬼神)이다. 선신이든 악신이든, 토속신이든 외래신이든 초자연적 힘을 가진 음(陰)과 양(陽)의 존재가 결합하여 존재하는 그것이다. 이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다스려 온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실재이다. 정령(精靈)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그 존재는 산 자를 향해 "내 말 좀 들어주오”, "내 말을 잊지 말아다오”, "내가 당신의 말을 들어 주겠소”라고 하며 무언가를 요구하고 또한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러한 사례가 영화 ‘파묘’를 통해 누누이 감지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참되고 성실한 마음과 자세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삶은 자연과 더불어 이어간다. 자연은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등 저절로 생겨난 만물 그 자체이다. 그리고 자연은 지리적이고 지질적인 환경에 따라 우리를 보호하고 또한 해치기도 한다. 그것이 풍수(風水)이다. 우주 만물을 설명하는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오행(五行)이 있다. 여기에 음과 양의 기운이 합치되어 만물 생성과 소멸을 따지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조합이 곧 음양오행이다. 풍수는 무속과 접목돼 땅 이치를 주재하는 지관(地官)의 신격으로 역할 한다. 그러니 무속과 풍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영화 ‘파묘’에서 땅을 파고 음터를 잡는 것, 그 이치를 파악하는 것 모두가 영의 힘에 의한 혼의 놀음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과학화된 오늘날에도 초자연적 힘을 받으며 삶을 영위한다. 실생활 구조가 이러한데도, 현대인은 두려움과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 종교 집단이 내세운 구원신앙에 치우쳐 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현세적 길복을 추구하는 무속과는 차원이 매우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무속은 정성의 신앙이다. 궁극적으로 영적 존재를 기쁘게 하는 종교이다. 그 중심에 제물과 금전이 있다. 현상의 근본적 원인으로 합리화되는 물질만능주의가 무속과 풍수 속에 담겨져 있는 이유이다. 조상을 기억하는 것도 땅을 건드리는 것도 모두가 정성으로 대하지 않거나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죄악이고 도덕과 윤리를 침해하는 신앙적 범죄이다. 초자연적 존재를 대하든 특정 물체를 다루던 나 보다 일찍 삶을 영위하다 먼저 간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든, 그들을 위하고 신봉하는 모든 행위에는 절차와 규범이 따른다. 그것을 한국무속과 풍수에서 매우 중시한다. 그 면면을 영화 ‘파묘’가 예술로 각색하여 보여주고 있다. 위의 서설을 중점에 두고 제작된 영화 ‘파묘’는 우리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부모 나 그리고 자식으로 연대 해온 혈연 속의 공동체 힘, 전통 끈을 이어 온 정신세계의 혼, 민족의 역사를 끊임없이 엮어 온 혼돈과 질서가 그것들이다. 세 개 물음을 ‘정성’으로 묶어 영화화한 것이 ‘파묘’이다. 여기에는 민족이 걸어온 고난의 역경, 그 속에 담긴 개개인의 애국적 마음가짐도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외래문화와 그에 따른 종교가 범람하는 오늘날의 사회일지라도 이 땅에는 수만 년 수천 년 세월을 지내며 한민족 정신세계를 지배하여 온 것이 있다. 그것이 영이다. 죽은 자의 영혼과 산자의 혼, 그것이 무속신앙과 풍수 사상에 묶여있다.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지만,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월이 바뀌고 환경이 변화여도 깨뜨릴 수도 짓밟을 수도 없는 필수불가결의 실체인 것이다. 사회로부터 따돌림받으며 왜곡되고 폄하되어 온 무형의 존재지만 관련된 규율과 규칙을 어기면 가차 없이 신이 내리는 벌의 대가를 치른다. 그것이 신벌이고 동티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부르짖고 슬픔과 애통함을 보듬어 온 무속신앙과 풍수 사상이 장재현 감독의 혜안으로 세상에 나온 까닭이기도 하다.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름 없는 묘(墓), 혼령(魂靈), 동티(動土), 도깨비불, 쇠말뚝(鐵針)의 간판을 걸고 창살 없는 감옥에서 뛰어나 온 한국인의 선언서, 영혼과 혼의 울부짖음 그것이 영화 ‘파묘’인 것이다. 한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 무속과 풍수는 신앙이든 예술이든 그 어떠한 것이든 한국인의 정신과 육체를 다스려 왔다. 그것은 과거나 현재에도 노닐고 있다. 신명을 일깨우는 영원불멸한 자유로운 모습으로 말이다. 그것은 또한 세상사의 모든 슬픔과 고통 소멸법을 우리의 재간에 담아 넣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주어진 운명에만 따르는 무기력한 개체가 아니라 상황 전환을 통해 언제든지 윤택함으로 거듭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존재임을 일깨운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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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7)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덤벙분청'에 대한 변명||"이 지역 정치인들은 밖으로만 광주정신과 ||시대정신을 모방할 뿐 안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 ||표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다시 역사를 ||상고해보라. 남도사람들이 어디 단 한번||이라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표를 몰아준 일이 있는가" 얼른 생각하기에는 신분도 높고 지혜도 뛰어난 오키의 도공들이 만든 품위 있는 다기가 훨씬 뛰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의 잡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역시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과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패배일 것이다. 즉 밖으로만 모방할 뿐 안으로부터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것이다.새삼스럽게 조선인처럼 가난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고 또한 잡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맛에 사로잡힌 부자유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참된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아직은 조작이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애의 상태에서는 더더구나 거리가 멀다. 조선인의 장점을 이은 선어(禪語)를 빌려 말한다면, 지미(只縻)의 경지에서 만들었다는 점에 있으며, 맛에 매달려 궁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것이 미묘한 갈림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과 그 예술'에서 말한 내용 일부다. 졸저 '무안만에서 처음 시작된 것들'(다할미디어, 2022)의 한 챕터에서 이를 베껴둔 것은, 우리의 분청사기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 혹은 해명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과감한 생략과 절제, 무욕과 해탈, 여백의 미를 톺아내는 것이 달마도의 회화며 분청의 세계가 어찌 다를 것인가. 작위적인 기교가 없으니 도교적 세계관과 통하는 것이요, 무욕의 심미안을 표상했으니 불교적 맥락과 통하는 것이라 했다.불교의 공(空), 도교 자유의지의 표현 말이다. 이 심미관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양식으로 분청에 표현되었으니 그 웅숭깊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오래전 내가 야나기무네요시 생가를 꾸며 만든 민예박물관을 찾았을 때 놀란 이유이기도 하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현관 가운데 딱 한 개의 옹기만 놔두었다. 남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질그릇, 그것도 약간 비대칭인 투박한 항아리 말이다. 무안분청(광주,전남을 포괄하는 호명 방식)의 기능을 배태한 무안만(내가 새롭게 구상한 영산강과 인근 바다의 다른 이름) 유역의 흙과 불과 땔감과 무엇보다 이 예술적 미감을 표현해낸 남도 사람들을 상고해보면, 양반예술과 대비되는 서민예술의 그윽함을 추적해볼 수 있다. 이것은 무안만 사람들의 생태적이고 호방한 세계관과 지향 속에서 생성된 것들이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남도 풍류와 남도 미학의 발흥이다. 영암의 도기와 해남의 초기청자, 강진의 자기에서 무안만의 분청까지, 남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옹관까지 거슬러 오르는 장대한 줄기, 그 속에서 발현되는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정신 말이다.덤벙분청의 세계분청사기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학자들이 미시마(三島)라고 부르던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고유섭(1905~1944)이 잡지 '조광(朝光)' 1941년 10월호에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언급하며 분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분청의 기법은 화장토(clay slip)를 도자기에 바른 후에 장식하는 기법이다. 6세기 중국의 월주요(越州窯)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세종 이후에는 국가에 진상하는 공납용으로 제작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국에 자기소 139개, 도기소 185개에서 대부분 분청사기를 생산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에 이해 분청의 기술이 일본에 소개된다. 16세기 이후 야마노우에 소지(山上宗二)가 조선의 분청다완(찻그릇)을 천하제일이라고 평한 것은,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분청의 기법은 상감, 인화, 박지, 철화, 조화, 덤벙, 귀얄 등이다. 이중 무안만에서 가장 선호했던 기법이 덤벙과 귀얄문이다. 지면상 고(古)덤벙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해둔다. 더 자세한 얘기는 졸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덤벙 채식(彩飾)은 도자기 장식에서 백색이나 색깔이 있는 흙물에 도자기를 덤벙 담갔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물에 어떤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다. 텀벙, 덤버덩, 덤벙, 덤벙덤벙, 덤버덩덤버덩, 담방 등의 용례가 있다. 하지만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자꾸 함부로 서둘러 뛰어든다는 뉘앙스의 '덤벙'이란 의미로 읽는 것은 단견이다. 담방담방이나 담방은 작고 가벼운 물건이 물에 떨어져 잠기는 소리를 말한다.둥덩둥덩이나 동당동당과 같은 말이다. 남도민요 둥덩애타령이란 호명이 여기서 나왔다. 옹기 옴박지에 물을 절반쯤 채우고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엎어 손으로 두드리면 동당동당 혹은 둥덩둥덩 하는 타악기 소리가 난다. 이를 '옴박지 장단'이라고 하고 특히 여인네들이 유희놀음을 할 때 이를 악기 삼아 노래했기에 '둥덩애타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덤벙은 '연못'의 방언이기도 하다. '웅덩이'를 '둠벙'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둠벙과 덤벙의 어원이 같다. 따라서 덤벙채색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덤벙댄다는 뜻이 아니라, 보다 생태적이고 고풍스런 뉘앙스다. 예컨대 '덤벙주초'는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의 기둥 밑에 두는 주춧돌을 말한다. 다듬지 않아서 거칠지만 그 질감이 주는 친자연적인 미감에 의미를 두는 시선이다. 야마다가 무안의 분청을 황실의 국보로 찬양하고 야나기가 조선의 옹기와 도자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귄대가리의 정체지난 칼럼에서 나는 거시기 연대기를 말하며 귄의 정체를 해명했다. 남도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가 다른 것을 변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땔나무꾼으로서, 적어도 누군가는 이 흐름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일종의 팬덤이었나? 생각 없이 덤벙대는 우둔한 자들이어서인가? 잘못된 행위를 극구 우김질하자는 게 아니다. 역사이래 거시기를 공유해온 사람들의 더불어 울림(共鳴)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지난 수 세기 동안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남도로 또 남도로 향했는가를, 또한 남도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수용하며 슬픔을 삭여냈는가를 말이다. 그래서다. 오늘 분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역시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과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패배감에 대한 것이다. 두렵고 화가 나는 것은, 현 집권당 특히 남도지역 정치인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안이한 처신이다. 남도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당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 표를 준 것이지 당신들의 안위를 위해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이 지역 정치인들은 밖으로만 광주정신과 시대정신을 모방할 뿐 안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역사를 상고해보라. 남도사람들이 어디 단 한 번이라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표를 몰아준 일이 있는가. 일본인들처럼 맛에 매달려 궁색하게 만들지도 않고 헛되이 치장하지도 않는다. 단 한 표 차로 졌어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이것이 게임의 원칙이다. 나중 호모루덴스 곧 놀이하는 인간을 소개할 예정이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것이 옳다. 요한호이징하는 그래서 종교와 전쟁도 놀이라고 했을 것이다. 경기에서 졌으면 '졌잘싸'로 변명하지 말고 협력하는 것이 정도다. 지금은 그것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할 일이다. 야나기에 비유컨대 여기가 미묘한 갈림길일까? 남도의 일당 정치인들에게 경고해둔다. 거시기의 연대를 몰상식하게 폄훼하면 나부터라도 가만있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나라의 의를 위해 떨쳐 일어나고 시대정신을 견인해 나온 남도사람들의 시대정신과 귄진 감각을.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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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춤 ‘흥에 취하고 멋에 흥하다’강유정 무용단이 ‘2024 강유정의 춤’ 공연을 오는 17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개최한다. ‘흥에 취하고 멋에 흥하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2024 강유정의 춤’ 공연은 강유정 무용단의 우수 작품들로 구성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세부 공연은 △벽파입춤 가인여옥(佳人如玉) △학춤(2인무) △달구벌 입춤 △진쇠춤 △태평무로 구성돼 있으며, 한성준-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는 전통춤의 계보를 이어받은 강유정(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태평무 이수자)만의 예술적 미학을 가미시켜 재연이 아닌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서 새롭게 재창출하고자 한다. 전통춤 계승의 의미는 단순히 전통의 보존만이 아니라 예술 무용으로 승화의 과정을 거쳐 발전이 거듭될 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닮은 듯 다른 춤들인 경기도 당굿의 음악, 무속-궁중-민속에서 발전된 춤의 매력을 탐구하며, 류파를 벗어나 세대를 이어가는 문화재의 ‘춤’에 더해 일제강점기 이후 안무된 흥과 멋의 전통춤들로 현시대의 전통춤 공연을 기획했다. 2024 강유정의 춤 ‘흥에 취하고 멋에 흥하다’ 공연은 만 7세 이상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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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 '한국의 친구 외국인 독립운동가' 단행본 발간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책을 펴냈다. 반크는 "한문화재단과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국내외에 알리는 '한국의 친구, 외국인 독립운동가' 104쪽 분량의 책자와 전자책을 발간했다"며 "향후 영어로 된 전자책을 발간해 미국 아마존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번 책자에는 다양한 국적, 성별, 직업의 외국인 독립운동가 10명의 이야기가 담겼다.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독립운동가 김성숙 아내로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한 중국인 두쥔훼이, 항일신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군산 3.1운동을 알린 미국인 윌리엄 앨더만 린튼, 임시정부 요원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중국인 저보성, 자기 선박으로 독립운동가를 도운 영국인 사업가 조지 루이스 쇼,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항일 의병을 세계에 알린 영국 언론인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헤이그 특사로 활동한 미국인 호머 베잘렐 헐버트, 일제강점기 한국인 변호를 맡은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등이다.이 책은 여러 연령대 사람들이 쉽고 친근하게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알수 있도록 그림과 글로 구성됐다. 이 책의 저자 이정애 반크 책임연구원은 "100년 전 한국이 다른 나라에 주권을 빼앗기고 힘든시기에 한국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이 책을 통해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지고, 전세계 한류팬들에게 알려지게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책자는 반크 한국홍보활동 우수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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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광주 고려인마을서 3·1절 만세운동 재연105주년 3·1운동을 기념하는 만세 재연 행사가 1일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 일대에서는 동포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한복을 차려입고 한 손에 태극기를 든 고려인들은 마을을 돌며 당시의 3·1운동을 재연했다.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3·1절 행사는 고려인마을 주민과 광주시민, 보훈 단체, 기관장 등 330여명이 함께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광주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가족들도 함께했다. 월곡 고려인문화관에서 출발한 이들은 태극기를 든 채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다모아 어린이공원까지 500여m를 행진했다. 이후 이어진 기념행사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한 뒤 독립군가를 합창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 다냐(30) 씨는 "교육기관에서 배워 3·1절에 대해 알고 있다"며 "한국의 아픈 역사를 기리고자 오게 됐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하루빨리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조국의 광복을 기원했던 선조들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2000년대 초반부터 3·1절 만세운동 재연 행사를 열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연해주 거주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의 피어린 투쟁이 이어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한 선조들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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